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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체 : PAN-asian performing arts magazine Vol.4(2011)
후쿠시마에서 온 편지 : 위기의 공동체와 예술 _박혜강, 이명훈

 

 

후쿠시마에서 온 편지: 위기의 공동체와 예술

글_예술공간 돈키호테(박혜강, 이명훈)

당신네의 핵은 ‘안전’하십니까?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강진과 대형 쓰나미가 발생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국내 방송은 앞 다투어 지진과 해일로 파괴된 일본 현지의 모습을 보도했다. 거대한 쓰나미가 해안가 마을과 도시를 집어 삼키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내보면서 간간히 계속되는 여진으로 흔들리는 도쿄의 모습이나 불안과 공포심으로 가득 찬 일본의 모습을 전하기 바빴다. 동시에 의외로 침착하게 사태를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전하면서 일본의 질서의식을 우리 국민들도 배워야 한다고도 했고 국제구호의 노력들도 보도하면서 세계 경제대국인 일본이 조만간 이 사태의 혼란을 극복하고 피해 지역들을 복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 복구에 한국이 어떻게, 얼마큼의 지원도 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물론 일본의 피해로 한국이 얼마만큼의 반사이득을 얻게 될지에 대한 기사들도 있었다. 주변국의 불행을 위로하는 동시에 계산기를 두드리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이 세계정치와 세계경제의 논리가 아닌가. 이는 일본이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대국의 기초를 다시금 다지게 된 것과 유사하다).
아무튼 지진이 일상화된 일본인에게는 이번 사태 역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간의 재난경험을 통해 마련된 매뉴얼을 통해 일본인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일상을 회복할 것임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세계 시민의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었던 일이 터졌다. 지진과 해일로 인한 원전의 파괴! 방사능 유출! 최대의 관심사는 이제 지진과 쓰나미가 아니라 피해 원전의 초기 복구에 쏠렸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사태와 같은 상상하기 어려운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지진과 해일로 인한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 정도는 관계자들의 브리핑이나 언론보도 이상으로 심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일본은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재난 영화에서처럼 사태는 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가 결성되고 그들이 피해 원전으로 투입돼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감동이 아닌 현실세계에서의 벅찬 감동을 세계시민들에게 선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9.11 사태에서는 비록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과 같은 가상의 슈퍼 히어로가 아닌 911 소방대원들이 영웅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이번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방사능의 수치는 날로 높아져갔다. 일본의 동북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국가인 한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세계 선진 국가들에서는 반핵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원자력의 유용성에 대한 거대한 불신이 일어났다. 다시 과학자들이 바빠졌다. 과학자들 못지않게 원자력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상업적으로 잘 이용해 왔던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바빠졌다. 일본의 사태를 통해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믿었던 원전에 대한 신뢰가 깨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유입되는 방사능량보다 이제는 국내 원전의 안전과 그 유용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이다. 원전 건설만이 대안인가? 국민의 안전과 재산의 보호를 최우선시 해야 할 국가가 원전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국익’이라는 정체는 무엇일까? 에너지 소비를 위해 에너지를 그 만큼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는 과연 합리적일까? 현재 국민의 에너지 과소비를 최대한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은 얼마만큼 효과적인가? 정부와 대기업이 국민들에게 에너지를 무한정 소비하게끔 조장하면서 에너지 부족을 내세워 원전과 같은 위험한 시설을, 그것도 전쟁휴전 상태인 남한에 계속해서 건설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에너지 정책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내 미디어를 보면 일본 원전사고나 국내 원전과 관련된 보도가 뜸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초기 일본 원전 사태의 충격을 강도 있게 보도함으로써 기사를 팔아먹었던 보도가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감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원전 관련 소식이 국내의 기득권(정부와 대기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모종의 차단막이 형성되었다고 상상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즉 이제는 일본의 원전문제는 일본이 안고 가야 할 국지적 문제이지 그것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문제, 더 나아가 에너지 정책이나 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할 만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확산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터진 원전사태의 피해를 주변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이 축소 은폐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대형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자력 발전에 대한 ‘발전적’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자폭’해도 좋다는 비상식적이고 반문명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빌어먹을 아름다운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 오늘의 예술가들이, 과학자(기술자)들이 어떤 세계를 꿈꾸고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세상은 바뀔 수 있는 것인가?

후쿠시마로 들어간 예술

지난 3월 말 후쿠시마 원전의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최후의 결사대’가 투입되었다. 당초 도쿄전력 직원 50명이던 최후의 결사대는 일본 각지에서 자원한 기술자들이 합류하면서 180여 명으로 늘었다 한다. 이들의 등장은 다시 한 번 일본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죽음을 각오하면서 그들은 왜 파괴된 원전으로 들어간 것일까? 투철한 직업정신? 애국심?
한 뉴스보도에 의하면 정년을 앞둔 지방 원전 기술자인 아버지가 자신의 눈물을 뒤로 한 채 “미래가 달려있다”며 후쿠시마로 향했다고 한다. 그 아버지가 생각한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결사대의 사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그들의 사투를 ‘시간과의 싸움’ 또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으로도 불렀다.

그와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일본의 즉흥음악가인 오토모 요시히데(Otomo Yoshihide)(주1)는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던 것이 분명하다. 도쿄에 거주하고 있었던 그는 후쿠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식들을 특히 트위터와 같은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1959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부터 1978년까지 약 10년 동안 후쿠시마에 살았다.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청소년기를 후쿠시마에서 보냈고 현재에도 부모님이 살고 있는 후쿠시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민감했을 것이다.

18살에 도쿄로 옮긴 후, 새해연휴 동안 가족들을 방문한 것 외에 거의 후쿠시마로 돌아가지 않았고, 3월 11일 지진까지, 그곳의 제 친구들 대부분과도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저는 향수병이나 그 같은 어떤 것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월 11일 지진 강타 후, 저처럼 비정한 사내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먼저 부모님들이 염려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괜찮다는 걸 안 후에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분명히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고, 제 주변의 뮤지션들도 그랬을 겁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 북동부 사람들을 위해 행동을 취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제 주변의 뮤지션들은 보통 “남을 돕는”단 소리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음악 외에는 다른 흥미라곤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이 “남을 도와준다”와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들 중 한 명 이었습니다.
(오토모 요시히데, 4월 28일 도쿄예술대 강의 중에서)(주2)

음악 외에 다른 흥미라곤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이 ‘남을 돕자’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오토모 씨는 우선 음악중심의 페스티벌을 생각했다. 현재의 후쿠시마에 페스티벌이 필요하다는 생각, 일본에서 또한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후쿠시마를 다시 외부와 소통시키고 긍정적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생각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의 후쿠시마 프로젝트 실행위원 미치로 엔도(Michiro Endo), 료이치 와고(Ryoichi Wago)와의 교류를 통해 조직된다. 미치로 엔도는 1950년 후쿠시마현 니혼 마츠시 출생으로 일본의 락 씬에서 전설적인 펑크밴드 <더 스탈린>의 리더로 유명해진 아티스트이고 료이치 와고는 1968년 후쿠시마 출생의 시인으로 지진 이후 트위터 상에서 <시의 돌 Shi no Tsubute>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셋은 후쿠시마에서 자란 예술가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면서 ‘후쿠시마 프로젝트’를 매우 섬세하게 공유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5월 8일 발표된 후쿠시마 프로젝트의 선언문 속에는 특히 ‘project Fukushima!’라는 타이틀에서 그들의 고민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FUKUSHIMA!' 선언문(주3)

2011년 8월 15일, 후쿠시마에서 음악을 중심으로 한 축제를 개최합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전개합니다.
제목은 ‘FUKUSHIMA!'. ‘No More 후쿠시마’도 ‘일어서라 후쿠시마’도 아닌 어떠한 형용사도 붙지 않는 ‘FUKUSHIMA!’. 현재 있는 그대로의 후쿠시마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후쿠시마에서 태어나고 자란 음악가와 시인들이 모였습니다.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뿐만 아니라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원자력 발전소 문제를 고려하면 지금은 후쿠시마에서 축제를 개최할 시기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 이런 때일수록 어떻게 현실과 마주할 것인가 하는 관점과 방향성을 사람들에게 시사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음악과 시, 그리고 예술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땅으로 세계에 알려진 FUKUSHIMA. 그러나 우리는 후쿠시마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향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도 후쿠시마가 외부와 연결되고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희망을 가지고 후쿠시마의 미래 모습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도 축제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을 곳이 필요합니다.
축제를 통해 현재의 후쿠시마를, 그리고 앞으로의 후쿠시마의 모습을 전 세계를 향해 알립니다. FUKUSHIMA를 긍정적인 말로 바꾸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2011년 5월 8일
프로젝트 ‘FUKUSHIMA!' 실행위원회
대표 와고 료이치, 엔도 미치로, 오토모 요시히데

4월 22일에 작성된 오토모 요시히데의 메시지를 5월 8일 발표된 선언문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오토모의 예술에 대한 철학과 방향이 프로젝트 후쿠시마에 깊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토모 요시히데 한 개인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해볼 문제는 오토모 씨를 통해 프로젝트 후쿠시마가 과연 무엇을 하고자 함인지 그리고 진행형인 프로젝트 후쿠시마를 통해 오늘의 예술이 처한 ‘어정쩡함’이 무엇인지, 동시대 예술로 번역되는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에서 말하는 '동시대성'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진 발생 직후, 그리고 원전사고로 이어지는 도미노 같은 겹 층의 충격파에 둘러싸인 일본을 향해 안팎에서 ‘힘내자 일본', '일어서라 후쿠시마’의 에코소리가 의심 없이 반복되었다. 언뜻 희망의 메시지를 내포한듯한 이 구호를 과연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오토모를 위시한 프로젝트 후쿠시마의 실행위원들은 ‘힘내자 일본’의 압박과 공허함(주4)을 감지했던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는 희망의 메시지가 고통에 처한 현지인들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현지인들에 대한 인터뷰기사를 보면 이러한 생각들은 놀랍게도 공통적이다) 심지어 누군가가 지시하며 다그치는 듯 위압적이다. 온 몸과 마음이 부서지고 상처 입어도 힘내고 일어서라는 냉혹한 호통소리 같지 않은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얼마큼 힘내고 일어서야한단 말인가?
그렇다, 이러한 구호에는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해 본다’고 하는 동시적 접근이 없다. 함께 생각한다는 것은 현실의 조건에 동등하게 직면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일처럼 함께 그 문제를 생각해 본다는 것이고, 그랬을 때 적어도 ‘최후의 결사대’ 같은 국가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가미가제식 희생을 신화화 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있는 그대로의 후쿠시마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프로젝트 실행위원회의 말은 오랜 고민과 질문에서 나온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접근이라 생각된다. 위기에 직면한 지금의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은 어떠해야 하는가?

위기의 공동체와 페스티벌

설령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가 되더라도 우리는 후쿠시마의 재생을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축제가 필요합니다. 음악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곳이 필요합니다.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희망이 필요합니다. 후쿠시마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후쿠시마가 밖의 세상과 연결되면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축제를 하나의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오토모 요시히데, 4월 22일 메시지 중에서)(주5)

신문과 TV뉴스는 우리의 프로젝트를 “후쿠시마를 후원한다”고 보도했지만, 우리의 의도는 이벤트성의 개최가 아닙니다. 후쿠시마의 극도의 가혹한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마주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프로젝트의 보편적인 주제들이며, 따라서 우리의 목적은 후쿠시마를 후원하거나, 후쿠시마 회복의 인상을 자아내거나, 혹은 그런 비슷한 일을 하려고 멋진 뮤지션들을 많이 데려오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토모 요시히데, 5월 21일 경과보고 중에서)(주6)

오토모 씨도 밝히는 바이지만 “전문 기술자조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원전 문제를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이, 하물며 음악가나 시인이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음악이나 예술의 역할 중 하나는 어떻게 현실과 마주보는가 하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는 데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오토모 씨의 메시지는 오늘의 예술이 분명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최후의 결사대’는 결국 원전 문제를 ‘지연’시키는 데에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원전을 원상 복구하거나 방사능 피해를 줄이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후쿠시마라고 하는 지역은 폐쇄되고 그 곳에서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아왔던 공동체의 일상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이벤트성으로 그들을 어물쩍 위로하고 현실을 외면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재생’과는 거리가 멀다. 재생의 본질은 현실을 어떻게 마주보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때로는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직면한 ‘현실’임을 알게 할 때, 예술이 처음부터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을 더욱 현실화시키는 것으로, 현실을 더욱 파고듦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현실’을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일반적인 페스티벌이 궁극적으로 일상의 공동체에게 일탈의 시간과 경험을 부여하는 예술이라고 한다면 일상이 파괴된 위기의 공동체에게 페스티벌은 다시금 ‘일상’이나 ‘평상’을 회복하게 하는 재생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는 ‘지금-여기’라고 하는 시간과 공간이 결합되는 장소성의 문제와 장소와 결합될 수밖에 없는, 대개가 평범하다고 믿고 있는 일상의 문제와 소재를 다루는 예술로 ‘현실화(realization)’하는, 실감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8.15 세계동시다발 페스티벌

프로젝트 후쿠시마! 는 크게 네 개의 프로그램으로 출발하고 있다. 후쿠시마를 비롯해 일본과 세계 각 처의 공간들에서 8월 15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던 “8.15 세계동시다발 페스티벌”, 원전사태에 직면한 문제와 해결 방법들을 워크숍이나 강좌를 통해서 공동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SCHOOL FUKUSHIMA”, 후쿠시마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외부로 알리는 “DOMMUNE FUKUSHIMA”, 참여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판매를 통해 프로젝트 운영재원을 마련하는 “DIY FUKUSHIMA”가 그것이다.
8.15 세계동시다발 페스티벌에서 한국은 서울의 <요기가> 와 순천의 <예술공간 돈키호테>에서 각각 진행됐다. 요기가에서는 카와구치 타카히로, 홍철기, 최준용, 진상태, 류한길, 사토 유키에, SLP, 이한주, 조영민, 이봉교 등의 실험음악가들이 모여 자유즉흥 연주회를 가졌으며, 예술공간 돈키호테에서는 박혜강, 이명훈, 조퇴계가 참여하여 ‘후쿠시마에서 보낸 편지’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원전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원전의 문제, 프로젝트 후쿠시마를 통해 본 예술의 문제를 발표와 토론 형식으로 짚어 보았다.
예술공간 돈키호테 프로그램에서는 비록 많은 시민들과 후쿠시마의 메시지를 공유하지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원전사고의 심각성이나 국내 원전건설을 둘러싼 정부와 대기업이 어떻게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장악하고 있는지, 오늘날 예술이 처한 전시행정으로서의 예술,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이벤트성으로서의 예술, 밀어내기 식 개발로 인해 해체위기에 처한 공동체와 그들을 응원하는 예술가들의 힘겨운 싸움 등의 문제를 짚어가면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참여(주7) 가 가장 본질적 사회 문제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 판도와 관계있는 것인지 이 시점에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문제는 단지 방사능 유출과 이에 기인하는 여러 문제뿐만 아니라 향후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한 전력 문제와 더 나아가서는 전력에 의지해 온 우리의 생활양식을 우리가 어떻게 다시 생각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쌓아 온 역사와 문화를 순식간에 빼앗아 버릴 수 있는 현재의 문명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코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오토모 요시히데, 4월 22일 메시지 중에서)

* 추신 : 이 글은 사실상 예술공간 돈키호테가 후쿠시마에 보내는 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우리는 일본 방문하고 오토모 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주석)


(주1)
일본의 대표적인 자유즉흥음악가. 1990년 '그라운드 제로'를 시작으로 다양한 밴드와 프로젝트를 조직해 왔으며, 많은 음악적 시도와 라이브협연을 통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그가 주축이 되어 싱가폴, 중국, 일본, 한국의 음악가가 함께하는 FEN(Far East Network)은 일 년에 한 차례씩 도시를 바꿔가며 연주모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0년 서울연주에서였다. 한국의 즉흥음악가 류한길이 참여하고 있다.
(주2)
오토모 요시히데의 홈페이지( http://www.japanimprov.com/yotomo/ )에 실린 2011년 4월 28일 도쿄예술대학강연, ‘The Role of Culture: After the Earthquake and Man-made Disasters in Fukushima'를 번역 (번역: 박혜강)
(주3)
프로젝트 후쿠시마 홈페이지( http://www.pj-fukushima.jp ) 에 실린 선언문을 한국의 오롤로 씨가 번역.
(주4)
도미야마 이치로, ‘내셔널리즘과 겁쟁이들의 미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1년 6월호
(주5)
프로젝트 후쿠시마 홈페이지에 실린 오토모 요시히데의 메시지를 한글로 볼 수 있다.
(주6)
오토모 요시히데 홈페이지에 실린 5월 21일자 경과보고, ‘Of Course I'm Torn:"Project FUKUSHIMA!" Progress Report' 한글번역본은 예술공간 돈키호테 홈페이지에서 읽어볼 수 있다.

산티아고 실베스테르, ‘참여예술, 이분법과 클리셰를 넘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1년 8월호


**예술공간 돈키호테(공동 대표 이명훈, 박혜강)는 지역의 공간과 장소 연구를 기초로 동시대 예술을 연구하고 기획하며 실행하는 예술공간으로 지난 2009년 12월에 개관해 그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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