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이브닝 예술포럼 2019-10월 포럼
순천-영화연구 1977년 순천과 여수에서 촬영된 영화 <사랑의 원자탄> 상영 X 대담
2019.10.29(화) 저녁 7시부터 예술공간돈키호테 상영(저녁 7시~8시45분) <사랑의 원자탄>(강대진 감독, 1977) 대담(저녁 9시~10시) 강성호(역사학), 박병섭(지역사), 박성태(사진작가) 진행 박혜강(예술공간돈키호테 디렉터) 관람료 자율후원제
10월 예술포럼의 주제
강대진 감독의 <사랑의 원자탄>은 동명의 원작 전기물을 영화화 한 것으로 1977년 11월 9일 개봉했다. 이 영화의 유명세는 한국기독교사회에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분히 원작의 인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원작을 통해 유명해진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의 ‘순교 일대기’는 현재도 많은 종교물로 재현되고 있다. 원작 『사랑의 원자탄』은 안용준 목사와 손의원의 공저로 1949년 기독교신문사에서 초판 발행되었다. 초판은 ‘전편’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948년 여순사건 당시 손양원의 두 아들(손동인, 손동신)이 순천에서 좌익계 청년들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거기에 가담했던 안재선을 손양원이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원자탄』은 1952년 안용준이 단독으로 집필한 ‘속편’이 나오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손양원이 1950년 9월 여수에서 퇴각하던 인민군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의 죽음(순교)을 기리기 위해 손양원이 집필했던 글과 함께 엮어낸 것이 『사랑의 원자탄』속편에 해당한다. 전편과 속편을 합본으로 엮어 ‘성광문화사’가 지금까지 계속 발행하고 있으며, 1974년 현재 9개국에서 발췌본이 번역 출간되었다. 출처 : 경향신문 1977.11.08 광고
안용준이 쓴 『사랑의 원자탄』 11판(1977년) 서문을 보면, 1977년 이전에 원작을 영화화하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이 산 순교실화를 영화화 시켜서 시청각 방법으로 복음 전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고 손을 댄 사람이 4~5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성공을 못했다. 심지어 촬영을 다 해놓고 녹음만 남겨놓은 채 중단된 일도 있었다. 1972년 5월에 길이 열려서 필자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 후에 기회 있는 대로 사랑의 원자탄 환등화를 계획해 왔다. 그러다가 「한국 초대교회 약사와 사랑의 원자탄」을 소개하는 환등을 제작, 1977년 8월 7일 로스앤젤레스 한인 침례교회에서 공개하였다."
안용준이 말하는 4~5건이 모두 어떤 건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최초의 시도는 1952년 한국전쟁기간 경향신문 광고란에 실린 “총액 일천오백만원 씨나리오 현상공모”였을 것이다. 전편과 속편 출간을 기념하여 ‘한국기독교순교자유가족원호회”에서 주최하였다. 그러나 이후 과정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 후 1962년 경향신문에 “「사랑의 원자탄」 = 유현목 감독 · 4월 20일 크랭크 인(최무룡 · 엄앵란 ·문정숙)”을 알리는 단신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후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촬영은 했지만 (앞서 안용준의 글에서처럼) 후반작업을 하지 못하고 폐기되었거나 지금도 어디엔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1977년 제작·공개했다는 환등(幻燈) 교본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77년 남아진흥(주)이 제작해서 개봉했던 <사랑의 원자탄>은 순천, 여수, 고흥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예술공간 돈키호테가 진행하고 있는 ‘순천-영화연구’와 지역의 역사와 장소성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록자료이다. 이번 10월 예술포럼을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16mm 필름본(101분)을 디지털본으로 전환하여 상영회를 가지려고 한다. 1990년과 2002년 한국비디오선교센타와 크리스찬미디어에서 각각 제작한 비디오본은 90분 분량으로 원본에서 11분이 편집되어 발매되었다. Youtube에 Christian Media CMTV가 공개하고 있는 영화 <사랑의 원자탄>은 원본과 동일한 분량이지만 일부 이미지가 잘려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상영회 이후 대담을 진행한다. 영화 <사랑의 원자탄>이 여순사건과 한국전쟁기간 순천과 여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연구자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를 초대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돈키호테는 포럼 이후 순천과 여수에서 추가 상영회를 계획 중이다. (돈키호테 콜렉티브) 
강대진(1935~1987) 감독에 대해 강대진은 1935년(기록마다 많은 차이가 있음) 전남 신안 비금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라벌예술초급대학(현 중앙대학교)에 진학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 국방부 정훈국에서 육군 정훈부사관으로 복무, 1956년 육군 하사로 예편했다. 서라벌예술초급대학이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3년 5월에 개교했기 때문에 강대진이 군복무 중에 학업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기록이 정확하지 않다. 군 예편 후 1957년 신상옥의 <무영탑> 조감독으로 시작해서(스승인 안종화 작품의 조감독으로 데뷔했다는 기록도 있음) 1959년 첫 작품 <부전자전>으로 감독 데뷔를 했다. 1987년 작고하기 전까지 48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1961년 작품 <마부>는 같은 해에 열린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과 1987년 제 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1977년 <사랑의 원자탄> 이후 감독한 <사랑의 뿌리>(1978), <석양의 10번가(빛을 마셔라)>(1979>), <죽으면 살리라>(1982) 세 작품은 <사랑의 원자탄>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대진 감독에 대한 기록은 자료 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아직 정확한 기술이 어려운 상태다.
상영작 정보 사랑의 원자탄 THE ATOMIC BOMB OF LOVE 한국_1977_Color_Sound_105min_HD from 16mm 강대진 감독/안용준 원작/김용진 각본/남아진흥주식회사 제작/기독교십자성선교회 후원 자료제공처 한국영상자료원 굿이브닝 예술포럼 2019 주최 : 순천시 문화도시사업추진단 주관 : 돈키호테콜렉티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