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순천문화재단 "웹진 틔움" 특집 2호(2022년 12월 30일 발행)에 기고했던 글이다. 순천도큐멘타와 순천이야기관, 미완성 프로젝트에 관한 소고 이 글은 2019년에 시작되어 2020년까지 진행되었던 ‘순천도큐멘타’에 관한 늦은 리뷰이다. 순천도큐멘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부터 추진했던 ‘법정문화도시’ 선정을 위해 순천시가 문화도시사업추진단(2020년부터 ‘문화도시센터’로 개편) 운영체계를 중심으로 예비적 사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촉발되었던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이 글은 지난 순천시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관한 부분적 리뷰이기도 하다. 참고로 지난 3년간 순천시는 예비문화도시 선정 이후 두 차례 법정문화도시 선정 기회를 놓쳤고, 윤석열 새정부 출범 이후 2023년부터 시행될 (가칭)‘문화도시2.0’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또는 누군가가 수행했던 지난 활동에 대한 돌이켜 봄, 성찰적 회고, 그 활동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에 대해 소홀하거나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닥친 일이 많아서, 앞으로 예정된 일을 준비하거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어떠한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나 또한 늘 바쁜 척을 하지만 지난 일과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종종 까먹어 버린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이런 감각은 중요하다. 지난 활동에 대한 기억 상실 또는 망각 현상은 특히 지역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지역에서 데자뷔처럼 과거의 행위나 말들이 불쑥불쑥 반복적으로 나타나거나 나에게 쳐들어오는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2019년 순천시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의 하나로 <순천도큐멘타: 문화의거리 10년>이 기획되었다. 순천 향동과 중앙동 원도심 일대에 문화의거리가 조성된 지 10년의 시간이 경과한 시점이어서 이 거리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 공간의 변화 등을 그동안 생산된 자료와 이야기를 통해 되짚어보면서 순천문화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의도였다. 기획 의도를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슬로건을 “순천을 기록하자, 이야기하자”로 정하기도 했다.
우선, 순천도큐멘타는 문화의거리 내 3곳의 문화공간에 4개의 아카이브 전시를 선보였다. 문화의거리 초입에 위치한 갤러리 ‘작업실의 오후’ 1층에는 <사진으로 보는 문화의거리-상전벽해>를, 2층에는 <순천이야기-문화의거리 10년>의 시청각적 종합 자료전을 펼치고, 식당을 문화예술카페로 리모델링한 ‘에이프런카페 갤러리’에는 <포스터로 보는 문화의거리 10년>을, 마지막으로 도시 한옥을 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한 ‘사화빈’에는 <지도로 보는 문화의거리 10년> 아카이브 전시를 펼쳐 11월 27일부터 15일간 선보였다. “선보였다”는 표현은 아무거나 마구잡이식이 아닌 ‘선별해서 보여주었다’는 의미로 ‘큐레이션(curation)’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카이브 전시 기간에는 담론·교육프로그램을 징검다리를 놓듯 설계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시민 참여를 위한 것으로 한옥글방과 장안창작마당에서 총 7차례 공개적으로 열렸다. 2008년 1월 작은도서관으로 개관해 문화의거리 조성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던 한옥글방에서는 ‘지역 기록유산과 기록문화’ 특강으로 홍영기 교수와 우승완 박사를 초빙해 매천 황현의 역사기록과 보존과정, 순천의 근현대 도시공간 변화를 관련 기록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자리를 각각 마련하였고 전시가 끝나는 시점에 지역 전문가 및 활동가 6인을 한 자리에 초대해 「순천이야기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주제로 좌담회(지역기록문화포럼)를 열었다. 다양한 활동 분야에서의 기록 관련 경험을 통해 (가칭)‘순천이야기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순천도큐멘타는 기록 행위-아카이빙을 중심으로 순천 관련 기록물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출판, 전시, 교육, 포럼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자료를 활용하고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가칭)‘순천이야기관’은 이러한 지역 기록과 기억에 관한 프로젝트의 거점과 활동 공간으로 제안된 것이었다.
이야기관(스토리움)은 순천시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시정자료관’과는 달리 시민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기록과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기록 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자율적이며,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시민공유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시민의 기록/기억 공간은 기록 행위가 단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방대한 데이터 모으기) 또는 자료의 진열로 머물거나 어떤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내용의 것인지 모른 채 보관 중이거나, 자료가 화석화되어 박물관화 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자료관, 박물관(미술관)을 융복합시킨 ‘라키비움(Larchiveum)’과 같이 업그레이드된 문화예술공간이 되어야 한다. 기록 행위가 보다 창의적이며 예술적으로 진화하고 확장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 이름처럼 이야기관의 핵심은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이다. 그러한 의도에서 도시재생 선도사업에 의해 2017년 문을 연 장안창작마당에서 “툭 터놓고 하는 말”이라는 타이틀로 총 4부에 걸쳐 순천 지역의 전시문화와 공간, 프리마켓, 독서문화와 책방, 노래공연문화를 주제로 집담회(集談會, ‘잡담회’가 아님)를 가졌다. 네 차례의 집담회에 다섯 명씩,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총 20인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했다.
이야기 프로그램은 기록(수집)의 부족을 참여 개인들의 기억-구술을 통해 보완하고자 기획한 것으로, 무엇보다 문자나 시각 정보의 전달 방식보다는 서로 마주 보고 자연스럽게 ‘말하기’와 ‘듣기’라는 대화/토론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구술기록 행위가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을지 확인하고자 했다. 각자 툭 터놓고 하는 말들은 유쾌했고 진지했으며 지역 사회에 던지는 질문과 모두가 풀어야 하는 공동의 의제도 내놓았다. 집담회는 순천 지역 사회가 스스로 담론의 장을 만들고 여론을 형성해나가는 공론의 장이 얼마큼 필요한가,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파워게임의 방식이 아니라 낮은 목소리, 작은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다양한 현장의 여러 목소리를 종합하는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
2019년 순천도큐멘타는 일종의 예시적 프로젝트로서 지역연구(주제)와 지역아카이빙(활동)이 지역아카이브(공간)를 중심으로 상호 교환되고 공유되는 ‘기록페스타(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9년 첫 시작으로 ‘문화의거리 10년’을 주제로 다루었다면, 2020년에는 90년대까지 황금기를 누렸던 원도심의 중심, 중앙동에 관한 기록과 주민의 기억 등을 수집한 ‘중앙동도큐멘타’와 순천만으로 흘러가는 동천의 자연생태계와 역사문화를 아카이빙한 ‘동천아카이브’가 각각 진행되었다. 또한, 두 개의 주제와 장소 아카이빙과 연계해 순천시정자료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80-90년대 과거 기록사진 필름을 꺼내어 스캔하기도 했다. 2020년 아카이빙은 축제의 형식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지만 ‘중앙동’과 ‘동천’이라는 순천의 역사문화, 생태문화에 있어 중요한 시간과 공간을 탐색한 작업이었다.
아카이빙의 후속 프로그램이나 활용 프로젝트가 이어지지 못한 것과 아카이빙의 성과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민들과 공유하지 못한 점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 아쉬움에 이 글을 남기는 것이지만, 과연 2019~2020년의 지역 아카이빙의 가치와 중요성을 당시 참가자, 관계자들이 얼마나 공유하고 있었을까? 과연 당시 이른바 ‘문핵관’(문화도시사업의 핵심 관계자) 그룹에서 지역아카이빙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업을 설계하고, 활동 기반을 다지고, 기록 인력을 양성하고, 지속가능한 지원 제도와 활용 방안을 모색했던가? 기록의 중요성과 그 활동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순천도큐멘타와 순천이야기관 등을 제안하였고 실행했으며, 지역리더로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가담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 질문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떤 망설임이었을까? 그래서 다시 되짚어본다. 무엇을 해보고자 했던 것인지를. 함께 다 못한 이야기는 언제 만나서 툭 털어놓을 날을 고대해 본다.
글_이명훈(예술공간돈키호테)
순천문화재단 웹진 보기https://www.cfsc.or.kr/contents/news/news0202.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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